차인표씨의 미니홈피에 올라온 글을 보고...(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한 글)

차인표씨의 미니홈피에 올라온 글을 보고..

차인표씨가 미니 홈피릍 통해 발언한 글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차인표씨는 자신의 미니 홈피를 통해 아프가니스탄에 피랍된 22명과 사망한 배형규 목사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글이 네티즌을 통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차인표씨가 말한 글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못하는 점도 있습니다.

차인표씨 글되로, 위험 곳에 가신 그 분들의 용기와 열정과 마음은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김혜자씨가 아프가니스탄 실태를 말씀해주시고, 그곳에 가서 봉사를 해야한다고 했을 때, '나라면' 이라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저라면 갈 수 없습니다. 그만큼 그곳이 가기 쉽지도 않을 뿐더러, 봉사와 헌신이라는 것이 힘든 것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길가다가도 어려운 분들을 도와주지 않고, 불우한 이웃돕기 같은 행사를 일년 한번? 아니 3년에 한번 참가할까말까 하는!!! 저인데...

차인표씨의 말씀되로 일면식없는 사람들에게 봉사를 하겠다는 마음과 헌신하겠다는 마음을 가진 23분의 마음을 높이 사는 편입니다. 또한, 사태가 어찌됐건, 방법이 어찌됐건, 그곳에서 위험한 상태에 빠지신 분들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양들의 발언과 마지막의 발언은 동의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전문을 보고 각자가 생각하는 바입니다!

*** 솔직히, 저는 '아프가니스탄이 위험하다' 간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그들의 모습에 '흠짓'
'흠짓' 놀랬습니다!!!

악어들이 득실거리는 어느 강가에 "위험"이라는 푯말이 서 있습니다. 강을 건너던 작은 배가 뒤집혀 아이들이 빠져서 허우적거립니다. 그들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한 무리의 어른들이 강으로 뛰어 듭니다. 아이들을 한명, 두명 구하던 그 어른들은 이내 악어의 공격을 받아 피투성이가 되기 시작합니다.

강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할까요? 아니면, "위험"이라는 푯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네 의지로 갔으니 알아서 해라" 할까요? 혹은 "지금 악어에게 물리고 있는 사람이 나와 같은 종교인가, 아닌가"를 분석할까요?

일면식도 없는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들을 돕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던 착한 사람들이 악인들의 손에 붙잡혀 생명이 위태로운 지금.. 그들을 바라보면서, "유서 쓰고 갔으니, 조용히 죽어라", "내가 낸 세금으로 몸값 지불하지 말아라" 라고 말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외국인들을 돕는게 밉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질투입니다. 그러면, 누구를 돕습니까? 나를 먼저 도와야만 착한 사람들입니까? 내가 먼저 살고, 그 다음 내 부모랑 자식들이 잘 살고, 내 친구들이랑 주변의 내 편들이 다 잘 살게 된 다음에, 그래도 여력이 되면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을 도와야 한다는 것은, 오로지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이기심입니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긍휼한 마음을 품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긴 스물세명의 소중한 분들에 대한 모함이요, 매도이고, 평가할 가치가 없는 나쁜 생각입니다.

크리스챤을 욕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챤은 예수님을 닮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지, 예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챤 중에서도, 돌아가신 배형규 목사님과 아직 억류되어 있는 스물두분은 선하고, 훌륭한 분들입니다. 이 분들은 존재함으로써 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보석같은 사람들입니다.

큰 교회 때문에 상처를 받을 수는 있습니다. 주위의 크리스챤 때문에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싫고, 이해 할수 없는 집단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양을 보고 양치기를 탓하지 말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순결하고 깨끗해야 할 양이 더럽고, 지저분 합니까?
새하얄 줄 알았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냄새나고, 털에는 벼룩이 있습니까? 순할줄 알았는데, 손을 내미니 그 손을 물어 버립니까?

그 더럽고 사납고 무례한 양을 거둬들여 보호하고 사랑하고 인도하는 양치기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양들을 그토록 사랑하게 만들었는지 말입니다.

양치기가 품은 양들은 천천히 바뀌어 나갈 것입니다. 지금은 우둔하고, 못나고, 기억력이 없어서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또 저질러 양치기를 슬프게 만들지 모르나, 어제 보다는 오늘, 오늘 보다는 내일... 그렇게 하루에 조금씩 양들은 변해 갑니다. 양은 결국 양치기의 모습을 닮아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순교하신 배형규 목사님이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듯 말입니다.

 <차인표씨의 미니홈피에서 발췌한 "애통하는 마음" 전문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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