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송희일 감독의 디워 비판 글과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일들 보고 드는 생각은? (블로그 글 전문 참조)

이송희일 감독의 디워 비판 글을 보고 드는 생각은?

어제 오늘 인터넷에서 많이 올라오는 글 중에 하나가 이송희일 감독의 디워 비판 글에 대한 글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송희일 감독의 영화 디워 비판 글이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알려진 뒤, 글이 급속도로 인터넷에 퍼지면서 이송희일 감독의 글에 대한 비판글과 지지하는 글들로 홍수가 나고 있습니다. (홍수라는 말은 좀 그런가요?)

이송희일 감독의 글을 보고있자면, 이송희일 감독의 100%마음은 아니지만 아주 조금 이송희일 감독이 왜 이런 글을 썼을까 하는 마음은 알겠더군요.

심형래 감독의 디워보다 더 극한 환경에서 찍은 영화들도 있고, 디워의 열정만큼이나 열정으로 찍은 영화들도 있다.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자체로보다는 디워의 열정과 디워의 편집된 애국심만 보고 극장을 가는 것이 아니냐!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또, 그 본질안에는 제작비 700억원을 받아 영화를 찍었는데도, 작품성보다는 영화촬영에 대한 애정과 애국심에 호소하는 디워 마케팅 방법과 관객에 대한 실망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송희일 감독의 마음을 100%은 아니지만, 이만큼 이해했습니다. (뭐,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지만서도...)

개인적으로 이송희일 감독의 글 본질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디워를 제작하는데 700억원은 작은 돈은 아니고, 디워의 열정만큼이나 열정을 가지신 분들이 많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송희일 감독의 글이 많은 분들께 지지를 받지 못했던 것은 표현의 언어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블로그에 올린 개인적인 생각의 글이겠지만, 아쉽게도 블로그의 글이 발행되는 순간 그 글은 이곳저곳 공유가 됐다는게...

남을 비판할 때, 자신의 글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비판의 방법은 어떠했는지를 한번 돌아봤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이 100% 맞다고, 진실이라고 해도!

이송희일 감독의 디워 비판 글을 글 자체로만 본다면, (이송희일 감독의 글에도 나왔듯이) '벌거숭이 꼬마' 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송희일 감독의 마음을 이해는 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과 글의 쓰인 언어는 이송희일 감독이 말한 '벌거숭이 꼬마'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사실, 심형래 감독의 디워를 보는 이유는 심형래 감독의 열정과 애국심 부분이 살짝이 있긴합니다. 또, 언론과 네티즌들에 대한 디워 평가가 다른 부분이 있기때문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린 시절 조아라 했던 심형래 감독이 6년간 만들었다는 디워가 어떤 영화일까 궁금한점도 영화를 보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비평가들의 평가가 100%맞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또, 영화는 비평가들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디워에 대한 영화 비평가들 글들을 보면 대부분 맞는 말입니다. 단, 그것은 영화가가 본 영화에 대한 평이지, 관객입장에서 본 영화에 대한 평은 아닌 것 같습니다.

*** 횡설수설 한 글 같네요...^^;;
*** 아래는 이송희일 감독 블로그의 글 전문입니다.
(출처 : 이송희일 블로그-정확한 이름은 아닙니다. via newvirus.tistory.com)


이송희일 감독이 쓴 글 전문

<디 워>를 둘러싼 참을 수 없는
쥔장 2007-08-02 04:53:53

1.
막 개봉한 <디 워>를 둘러싼 요란한 논쟁을 지켜보면서 최종적으로 느낀 것은 막가파식으로 심형래를 옹호하는 분들에게 <디 워>는 영화가 아니라 70년대 청계천에서 마침내 조립에 성공한 미국 토스터기 모방품에 가깝다는 점이다. '헐리우드적 CG의 발전', '미국 대규모 개봉' 등 영화 개봉 전부터 <디 워>를 옹호하는 근거의 핵심축으로 등장한 이런 담론들과 박정희 시대에 수출 역군에 관한 자화자찬식 뉴스릴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여기는 여전히 70년대식 막가파 산업화 시대이고, 우리의 일부 착한 시민들은 종종 미국이란 나라를 발전 모델로 삼은 신민식지 반쪽 나라의 훌륭한 경제적 동물처럼 보일 뿐이다. 이야기는 엉망인데 현란한 CG면 족하다고 우리의 게임 시대 아이들은 영화와 게임을 혼동하며 애국심을 불태운다. 더 이상 '영화'는 없다. 이 영화가 참 거시기하다는 평론가들 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악다구니를 쓰는 애국애족의 벌거숭이 꼬마들을 지켜보는 건 정말 한 여름의 공포다.

2.
그 놈의 열정 좀 그만 이야기 해라. <디 워>의 제작비 700억이면 맘만 먹으면, 난 적어도 350개, 혹은 컬리티를 높여 100개의 영화로 매번 그 열정을 말할 수 있겠다. 제발, 셧업 플리스. 밥도 못 먹으면서 열정 하나만으로 영화 찍는 사람들 수두룩하다. 700억은 커녕 돈 한 푼 없이 열정의 쓰나미로다 찍는 허다한 독립영화들도 참 많다는 소리다. 신용불량자로 추적 명단에 오르면서 카드빚 내고 집 팔아서 영화 찍는, 아주 미친 열쩡의 본보기에 관한 예를 늘어놓을 것 같으면 천일야화를 만들겠다. 언제부터 당신들이 그런 열정들을 챙겼다고... 참나.

심형래씨는 700억 영화짜리 말미에 감동의 다큐와 감동의 아리랑을 삽입하고, TV 프로그램마다 나와서 자신의 열정을 무시하지 말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아예 그럴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 고지깔 안 보태고 영화판에 몇 만 명은 족히 존재할 게다.

지구가 존재한 이래 충무로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아서 영화를 찍어놓고, 누가 누구를 천대했다는 건지, 참나.

3.
충무로가 심형래를 무시한다고? 정작 심형래를 '바보'로 영구화하고 있는 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다. 충무로라는 영화판은 대중문화 시대를 살아가는 소비자들에게 애증의 욕망 대상이다. 스타들을 좋아하지만, 반면 끊임없이 스타들을 증오하는 두 가지 배반된 욕망의 투영물인 셈. 이는 스펙타클화되어 있는 정당 정치에 대해 시민들이 갖는 이중의 배리되는 시선과 닮아 있다.

예를 들어 기존 정당 정치에서 배제된 듯 보이는 '바보' 노무현은 잘 살고 거짓말을 일삼는 기존 정치인들에 대한 유일한 대항점으로 시민들에게 비춰지면서 대권을 잡는 데 성공했다. 심형래는 이와 다르지 않다. 충무로에서 지속해서 배척된다고 가정된 바보 심형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심형래의 아우라와는 하등 상관이 없다. 그저 기존 충무로에 대한 환멸이 투영되어 있으며, 바보는 여전히 바보로서 시민들에게 충무로에 대한 환멸의 근거를 제공할 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보 전략'은 바보 아닌 것들을 비난하며, 서로를 바보, 바보 애정스럽게 부르다가 끝내는 정말 바보가 되어 선거함에 투표 용지를 몰아 넣거나 친절하게 호주머니를 털어 영화 티켓값으로 교환해주는 바보 놀이, 즉 아주 수완 좋은 훌륭한 마케팅이라는 것이다.

4.
심형래와 기타노 다케시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코메디언 출신이면서 B급 영화들을 만들어낸 두 사람의 차이 말이다. 열정의 차이? CG의 기술력의 차이? 애국심의 차이? 헐리우드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의 차이? 딱 하나 있다. 영화를 영화적 시간과 공간 내에서 사유하는 방식에 대한 차이다.

CG가 중요한 것도, 와이어 액션이 중요한 것도, 단검술과 권격술의 합의 내공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스스로조차 정리가 안 되어 있다면, 그 아무리 입술에 때깔 좋고 비싼 300억짜리 루즈를 발랐다고 해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5.
좀 적당히들 했으면 좋겠다. 영화는 영화이지 애국심의 프로파겐다가 아니다. 하긴 도처에 난립하고 있는 온갖 징후들로 추측해 보면, 이 하수상한 민족주의 프로파겐다의 계절은 꽤나 유의미한 악몽의 한 철로 역사의 페이지에 기록될 게 분명하다. 아, 덥다 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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